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 이동순 (다음백과)
이동순(李東洵, 1950~ )은 일찍이 백석에서 발원한 내향적 토속 정서를 추구하는 계보에 드는 시인이다. 임우기는 이동순이, 『사슴』(1936)에서 백석이 보여준 이야기시의 모범적인 창작 원리를 그대로 전수, 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종속절의 연쇄를 통한 복문 구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단편화되고 인상적인 얘깃거리를 긴장감 있게 배열하는 것”이 백석 시의 창작 원리인데, 이동순의 여러 시편도 이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각주1)
이동순은 경북 상좌원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나온다. 현재는 영남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는 197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마왕의 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다. 이어 1975년에 이하석과 2인 시집 『백자도』를 펴낸 그는 1976년부터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한다. 이제까지 그는 『개밥풀』(1980) · 『물의 노래』(1983) · 『지금 그리운 사람은』(1986) · 『철조망 조국』(1991) ·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 간다』(1992) · 『봄의 설법』(1995) · 『꿈에 오신 그대』(1995) 등의 시집을 펴낸 바 있다.
『지금 그리운 사람은』에는 기계화와 함께 차츰 밀려나는 재래 농경 문화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을 노래한 시편들이 주로 실려 있다. 구체적으로는 소멸의 운명에 놓인 재래 농구(農具)들에 대한 애틋한 농본주의적 정서의 재현이 이 시집에서 그가 목표한 바처럼 보인다. 재래 농구들에 대한 박물적 지식과 사멸된 토착어의 발굴 같은 이 시집이 거둔 성과는 “농업 사회적 전망의 추구”와 잘 어울린다.
『지금 그리운 사람은』의 세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농구 시편’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있는 26편의 연작 시편이 한 덩어리라면, 농촌에 생활 근거를 둔 이들의 핍박한 생활과 그 마음의 골짜기에 서려 있는 시린 응달을 조명한 시편들이 다른 한 덩어리다. 이 시집의 중요한 성취는 ‘농구 시편’ 연작을 통해 드러나며, 뜻깊은 시인의 관심이 광채를 발하고 있는 부분 또한 아무래도 여기다.
이동순, 「오줌장군」, 『지금 그리운 사람은』(창작사, 1986)
푸석푸석 무너져 내리는 / 흙담 옆에서 빛 바랜 풀이엉 하나 둘 / 삭아 흐르는 빈지쪽 뒤꼍 찬 응달 구석에 / 그는 앉아 있다 단정하게 / 오지로 빚었건 말건 나무통으로 엮었건 말건 / 모두 한 자리에서 좁은 주둥이를 열고 / 하늘조차 밝고 동그랗게 받아들이며 / 이따금 날아드는 길 잃은 벌레 / 곁에서 장작 팰 때 튀어드는 나무 푸서기도 아랑곳없이 / 조용히 조용히 썩어간다 / 오, 거룩한 부식이여 아름다운 포말이여 / 수십 개의 나무로 만든 장군이 / 소달구지에 실려 밭으로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 희뿌연 새벽 안개 속에서 / 그들은 흙과 하나 되려는 당당함, 혹은 / 어떤 엄숙성마저 보여주고 있었다 / 삐걱거리는 소리가 천천히 멀어져 갈 때 / 나는 척박한 땅 속에 반쯤 / 몸을 묻고 있는 또 다른 장군 하나를 보았다 / 철모에 자루를 박아 만든 바가지를 들고 / 나는 오줌구유의 잘 익은 오줌을 가득 떠서 / 빈 장군에다 정성껏 부어 담았다
우리 민족의 살림살이는 오랜 세월 동안 농업 경제의 토대 속에서 성장, 변모해왔다. 그렇다면 농업 경제의 바탕을 이루는 실제적 연장인 농구들은 농사를 위한 연장이나 노동의 부속물이라는 의미를 넘어 우리 민족의 살림 그 자체이며, 노동 그 자체이고, 삶 그 자체다. 따라서 ‘농구 시편’의 소재들인 따비 · 오줌장군 · 개똥삼태기 · 도리깨 · 뒤웅박 · 연자매 · 똥바가지 · 멍석 · 쇠스랑 · 낫 · 작두 · 지게 · 호미 같은 우리 농촌의 중요한 세간 속에 깃들여 있는 혼에 대한 탐색은 그 농구 하나하나에 새겨진 역사의 시련과 삶의 애환, 민중의 슬픔과 기쁨, 그 근원적 민족 정서의 생생한 결을 드러내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낳은 것이다.
시인의 상상 체계 속에서 농구들은 인간을 돕는 연장이 아니라 인간과 하나 된 삶 그 자체다. 이런 것이 인격화되어 스스로 꿈꾸고, 아파하며, 애마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응달 구석에서 조용히 썩어가는 오줌장군의 모습에서 “거룩한 부식, 아름다운 포말”을 보는 것은 사물과 사람, 도구와 주체라는 이원적 구별을 넘어 땅의 일이라는 신성한 노동 속에서 서로 하나 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오줌장군의 부식과 소멸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해가던 인간의 부식이며, 소멸이기 때문이다. 그 뒤를 잇는 “수십 개의 나무로 만든 장군이 / 소달구지에 실려 밭으로 나가는 것”을 “흙과 하나 되려는 당당함” 또는 어떤 “엄숙성”을 보여주는 의미로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생각의 고리 속에서다. 오줌장군은 흙과 하나 되려는 노동이며, 그것과 한치의 빈틈도 없이 하나 된 의연한 노동의 주체인 인간 자신이며, 연장―일―인간이 조화를 이루어 창조하는 진정한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진정한 삶의 단단한 기반 그 자체이던 재래 농구들은 이제 그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채 조용히 부식과 소멸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다. 시인의 참마음이 그 농구들에 가 닿을 때 시인은 문득 귀를 열어 그런 것이 전하는 소리를 “쟁쟁히” 듣는다. 이동순 시인은 농구들의 이런저런 얘기를 다시 우리에게 고스란히 들려주는데, 그 소리 그릇이 바로 ‘농구 시편’ 연작이다.
재래 농구들은 오랫동안 우리 생활의 참다운 동반자였다. 시인은 이제 사라질 운명 속에 놓인 그 농구들을 그리움 속에서 떠올려보고 그 뜻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이동순의 『지금 그리운 사람은』의 세계는 재래 농구들의 조용한 소멸을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참마음의 세계다. 시인은 참마음으로 농구들을 단순한 농업 생산 도구나 연장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처럼 숨쉬고 인격을 가진 주체로 끌어안는다. 시인의 그윽한 어조 속에 되살아난 농구들은 그 하나하나마다 매섭고 서늘한 아름다움의 빛을 뿌리며 제자리에 그렇게 박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