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께서는 아득히 흘러간 시절, 앳된 신혼부부였던 가슴 설레는 청춘의 추억이 있으시지요? 그 시절 그 광경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장면들이 하나둘이 아닐 것입니다. 마치 흑백사진 앨범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아련한 실루엣들도 많을 테지요. 돌이켜 보노라면 참 아름답고도 눈물겨운 시절이었습니다. 이제 그 과거의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가서 다시는 우리 앞에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오늘은 1930년대 일제식민지 후반기의 신혼부부 풍속도를 소상하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노래 하나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1938년 3월, 서울의 리갈레코드사에서는 고마부 작사, 유일 작곡으로 ‘미스 리갈’이란 예명을 갖고 있던 가수 장옥조가 ‘신접살이 풍경’이란 노래를 취입 발표했습니다. 전체 3절 구성으로 펼쳐지는 이 노래는 신혼부부 중 새댁의 불만과 앙탈, 투정의 화법으로 전개됩니다. 가수 장옥조는 1935년 10월 ‘울어도 울어도’(유영일 작사, 강구야시 작곡)를 발표하면서 리갈레코드사 전속가수가 됐습니다. 이때 나이가 18세 무렵이었는데, 장옥조는 대구에서 출생했고, 태어난 해는 1917년 전후로 추정됩니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력은 보통학교를 겨우 마쳤고, 졸업 후에는 여러 해 동안 상점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점원으로 일했습니다. 서울 콜럼비아레코드사 직원의 눈에 띄게 됐고, 그로부터 얼마 뒤 가요계에 정식으로 발탁이 된 것입니다. 리갈의 전속으로 활동할 때 회사에서는 장옥조의 눈을 안대로 가리고 안대 위에는 ‘미스 리갈’이라고 써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시켰습니다. 일종의 상업적인 판매 전략이었는데, 이게 제대로 먹혀든 것입니다. 대중들은 미스 리갈의 안대를 벗기라고 레코드사에 항의전화를 걸며 소동을 부렸습니다. 마침내 회사에서는 안대를 풀게 하고 본명 장옥조를 밝히도록 했습니다. 옛날과 오늘의 신혼부부 풍속도는 서로 어떻게 동일하고 또 바뀌어졌는지 한번 비교해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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