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 선민영화사와 백조영화사의 공동제작으로 유두연 감독이 메카폰을 잡았던 <카츄샤>란 제목의 영화가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서울 국제극장에서 개봉되어 무려 10만명의 관객을 모았지요. 김지미·최무룡·황정순·김동원 등이 출연했던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제시대 한 부농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옥녀(김지미)는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온 그 집안의 상속자 대학생 원일(최무룡)과 급속히 가까워졌고, 기어이 아기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원일이 서울로 떠나자 옥녀는 쫓겨나고, 서울에서 ‘카츄샤’란 이름의 카바레 여인으로 전락합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원일은 양심의 가책 속에 검사직마저 버리고 달려와 옥녀의 일을 돌봐줍니다. 하지만 옥녀는 결국 원일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둡니다. 줄거리는 얼핏 들어봐도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1645~1729)의 소설 <부활>(1899)의 한국판 번안과 각색으로 만든 것이지요. 귀족 청년과 하녀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음악담당은 ‘꿈꾸는 백마강’의 가수이자 작곡가였던 이인권이 맡았습니다.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가신/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 잊어…’
이렇게 시작되는 주제가 ‘카츄샤의 노래’는 가수 송민도(1925~)가 불렀습니다. 그리고 한곡 더 만들어진 주제가는 바로 ‘원일의 노래’(유호 작사, 이인권 작곡)인데, 이 노래를 배우이자 미성의 가수로 활동했던 최무룡(1928~1999)이 영화에 출연해서 직접 불렀습니다. 주변이 고요한 시간에 이 유성기 음반을 듣노라면 노래 앞에 이런 정겨운 대사가 먼저 들려옵니다.
“최무룡입니다. 이번에 제가 주연한 영화 <카츄샤>의 주제가를 한번 불러볼까 합니다. 약한 여자이기에 받아야 했던 모진 운명을 안고, 북쪽 하늘 밑 거치른 벌판을 한없이 흘러가야만 했던 카츄샤에게 또다시 옛님의 다사로운 입김이 되살아오길 빌면서 저는 이 노래를 부르렵니다.”
참으로 깔끔한 음성으로 속삭이듯 조곤조곤 엮어가는 최무룡의 대사 솜씨는 가히 일품이었습니다. 예전 농촌에서의 집안 잔치,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이 노래를 즐겨 부르던 사람들은 어김없이 분위기 있는 연기동작으로 최무룡의 이 대사를 엮어가며 좌중을 매료시켰습니다. 대사의 서두 “최무룡입니다”란 대목에서는 자신이 마치 영화 <카츄샤>의 주연배우 최무룡이기나 한 듯이 한껏 멋을 뽐내고 잰 척하며 불렀는데, 이때마다 좌중에선 사뭇 감탄의 함성과 비명이 터지곤 했습니다. 대사가 끝나면 바로 다음 노래가 흘러나왔지요.
내 고향 뒷동산 잔디밭에서/ 손가락을 걸면서 약속한 순정을/ 옥녀야 잊을소냐 헤어질 운명/ 차가운 밤하늘에 웃음을 팔더라도/ 이제는 모두 잊고 내 품에 잠들어라
-‘원일의 노래’ 1절 가사
이동순<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