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이동순의 그 시절 그 노래⑹김해송의 ‘팔도장타령’ 2016-08-12 농민신문

가포만 2016. 12. 13. 18:33

일제강점기…모든 것 수탈해간 그들을 비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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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주나 감사 삼년에 해가 나서 못하고/연안 배천 인절미는 송도장꾼이 다 먹고/황주 봉산 능금 배는 서울장꾼이 다 먹고/신계 곡산 머루다래는 처녀총각이 다 먹네/얼씨구두 잘 한다 하/절씨구두 잘 한다/아~아~어~어~품바 품바 잘 한다. -‘팔도장타령’ 1절



 어린 시절, 재래시장의 붐비는 장터 부근에서 각설이패들이 흥겹게 벌이던 타령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얼씨구나 잘 한다 품바나 잘 한다/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로 서두를 열어가던 이 ‘각설이타령’은 소외자·방랑자로 살아가던 각설이패들이 현실에 대하여 냉소하고 저항하는 풍자적 내용으로 사설을 엮었지요. 일명 ‘품바타령’으로도 불렸는데요. 전체 구성 중에 조선팔도 전역의 장터를 두루 등장시키기 때문에 ‘장타령’으로도 불렸습니다. 메나리조로 진행되는 가락의 특징을 보면 필시 경상도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간 듯합니다.

 내용은 대개 각설이패가 소리를 하면서 동냥을 청하는 내용으로 펼쳐집니다. ‘장타령’에서는 주로 지명의 느낌을 활용한 익살과 풍자가 이어집니다. 예를 들면 ‘슬슬 긴다 기계장 무릎 아파 못 보고/앉아본다 안강장 고개 아파 못 보고/서서 본다 서울장 다리 아파 못 보고/아가리 크다 대구장 무서워서 못 보고/코 풀었다 흥해장 미끄러워서 못 보고/초상 났다 상주장 눈물이 나서 못 보고/똥 쌌다 구례장 구린내 나서 못 보고…’라는 대목들에서 듣는 이가 어깨춤이 절로 나고, 포복절도(抱腹絶倒)하도록 만듭니다.

 1939년 서울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는 ‘팔도장타령(김다인 작사, 김송규 작곡, 김해송 노래)’이란 만요풍(漫謠風)의 노래가 음반으로 나왔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직후 일제는 식민지 백성들의 숨통을 더욱 옥죄는 통치를 강화시켜갔지요. 국가총동원령·국민징용령 따위의 악법이 발표되어 민족생존은 더욱 절박한 위기에 다다랐을 무렵입니다.

 이 시기에 나온 ‘팔도장타령’에는 전국의 모든 농특산물 및 이익을 느닷없이 나타난 수상한 자에게 다 빼앗기고 만다는 은근한 풍자와 비판이 들어 있습니다. 그 풍자는 모든 물자를 수탈해가던 식민통치자들을 비꼬고 냉소하는 의미로 되살아납니다.


노래 제목은 ‘팔도장타령’이지만 정작 가사 전체에는 황해도(1절), 평안도(2절), 함경도(3절) 등으로 모두 한반도 북부지역의 장터만 등장시키고 있네요. 입이 있어도, 눈으로 보고서도 식민지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한마디 말조차 할 수 없던 시절, 이런 때에 나온 ‘팔도장타령’은 가슴속 쌓였던 불만을 노래 속에 슬쩍 실어 내보낼 수 있었던 해소(解消)의 도구였습니다.   

요즘도 농촌의 재래시장 주변에서는 코믹하게 분장을 한 무명 각설이패의 즉흥공연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공연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보시기 바랍니다.

 이동순<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