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향 찾아서/너 보고 찾아왔네 두메나 산골/도라지 꽃 피는 그날 맹세를 걸고 떠났지/산딸기 물에 흘러 떠나가도/두번 다시 타향에 아니 가련다/풀피리 불며 불며 노래하면서 너와 살련다
-배호의 ‘두메산골’ 1절
사람마다 재능이 한가지씩은 반드시 있다고 합니다. 그 재능을 일찍 찾아내어 힘껏 밀어붙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고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성장기 자녀들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유심히 지켜보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키워주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오늘은 우리 곁을 떠난 지 45주년이 되는 불세출(不世出)의 가수 배호(裵湖, 1942~ 1971)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가 자욱이 낀 날이면 어김없이 ‘안개 낀 장충단공원’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가수 배호.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던 그의 굵고 중후한 바리톤 남저음(男低音)과 절정 부분에서의 애절한 고음은 어찌 그리도 정겹고 애잔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던지요.
가수 배호는 1942년 중국 산둥성 지난(濟南)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모두 평안도 출신이었지요. 8·15 광복 후 귀국선을 타고 돌아왔지만 험한 세상의 파도 속에서 그의 부모는 인천·서울·부산 등지를 떠돌면서 고생스럽게 살았습니다. 부모 슬하에서 어린 배호의 삶도 마찬가지였지요. 그의 생애는 온통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했던 듯합니다. 1963년 21세에 노래 ‘굿바이’로 데뷔하여 1971년 ‘마지막 잎새’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의 주된 활동 시기는 1960년대 중후반입니다. 가요계에 몸담았던 시기는 도합 8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1960년대의 한국사회는 농경시대에서 산업화 사회로 옮겨가는 급격한 변동의 분기점에 놓여 있었습니다. 농민들이 도시에서 다른 일자리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며 고향을 떠나는 이농현상은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그 무렵 이농인구는 무려 350만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런 시기에 많이 불려진 배호의 대표곡 ‘두메산골(반야월 작사·김광빈 작곡, 1963)’은 그런 점에서 사회사적 의미를 지닌 가요작품입니다. 농촌이 텅 비게 되는 공동화 현상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이 가사에 역으로 반영되어 있지요.
배호의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외삼촌 김광빈입니다. 외삼촌이 꾸려가던 악단에서 드럼을 연주하다가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이후 대중들의 커다란 인기에 부응하기 위해 신장염이라는 지병을 치료해가면서 무대 위에 섰습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때로는 무대 위에서 사회자가 부축한 상태로 노래를 하기도 했지요. 노래를 부르던 중 각혈까지 했다고 하니 마치 선배가수 남인수(南仁樹, 1918~1962)의 말년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배호는 지병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가던 도중 구급차 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동순<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