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이동순의 그 시절 그 노래⑽박재홍의 ‘유정천리’ 2016-09-09 농민신문

가포만 2016. 12. 13. 18:38

전쟁 후 고달픈 삶과 막막한 심정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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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못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눈물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박재홍의 ‘유정천리’ 1절

1959년 죽림영화사는 남홍일 감독의 영화 <유정천리>를 개봉해서 큰 반응을 얻었습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살던 세식구는 시골생활이 싫어 무작정 서울로 떠나옵니다. 하지만 생계는 막연했지요.

 고향 선배의 소개로 운전학원을 다녀 택시기사가 된 남편(김진규)은 새 직업을 갖게 된 기쁨을 아내(이민자)와 함께 나눕니다. 하지만 곧 교통사고를 내고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남편 옥바라지를 해야 할 아내는 남편 택시회사 동료(박암)와 바람이 나서 어린 아들(안성기)을 버려둔 채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아들은 부모를 잃고 울면서 헤매는 거지소년으로 떠돕니다.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남편은 어느 날 거리에서 아들과 극적으로 만납니다. 그간의 정황을 알게 된 남편은 몹쓸 아내를 원망하지만 모든 것을 잊고 굳세게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그리곤 아들의 손목을 잡고 황혼이 비끼는 언덕길을 오르며 이렇게 외칩니다. “가자!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내 고향으로.” 이 영화는 많은 관객들의 손수건을 흥건히 적시도록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주제가 제목도 ‘유정천리(반야월 작사, 김부해 작곡, 박재홍 노래)’였지요.

 노래 가사에는 1950년대 후반, 전쟁을 겪은 한국인들의 고달픈 삶과 막막하던 심정이 실감나게 담겨져 있습니다.

 마을 모임자리에서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1절을 선창하면 전체주민들이 눈을 지그시 감고 2절을 합창하던 장엄한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러므로 이 노래의 가사와 가락에는 우리 민족의 삶과 생생한 숨결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1960년은 대통령선거가 있던 해였습니다. 그런데 유력후보였던 조병옥 박사가 유세 도중 돌연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과 4년 전 신익희 선생을 선거 도중에 잃었던 국민들은 허탈감과 울분을 참을 길이 없었습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민초들의 분노는 자유당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비판적 분위기로 급변했고, 이 과정에서 유행가 ‘유정천리’는 4·19민주혁명을 촉발시키는 매우 유용한 도구로 바뀌었지요.

독재정권 풍자, 민중의 허탈감을 담은 노랫말로 고쳐져 순식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오죽하면 가수 박재홍이 무대에서 ‘유정천리’를 노래할 때 개사곡으로 불러달라는 관객들의 요구가 빗발치기까지 했을까요?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선생 길을 따라/장면박사 홀로 두고 조박사도 떠나갔네/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당선 길은 몇구비냐/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비가 오네”

 이동순<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