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쪽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날으면/ 뒷동산에 동백꽃도 곱게 피는데/ 뽕을 따는 아가씨들 서울로 가네/ 정든 고향 정든 사람 잊었단 말이냐// 찔레꽃이 한잎 두잎 물위에 날리면/ 내 고향에 봄은 가고 서리도 차네/ 이 바닥에 정든 사람 어디로 가나/ 전해오던 흙냄새를 잊었단 말인가
1952년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는 가수 장세정(張世貞, 1921~2003)이 부른 ‘고향초(김다인 작사·박시춘 작곡)’라는 노래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노래의 작사자 김다인(茶人)은 월북시인 조명암(趙鳴岩, 1913~1993)의 또 다른 필명인데, 원곡은 1948년 송민도(宋旻道)의 데뷔곡으로 이미 발표된 바 있지요. 이 노래에 대한 애착이 특별했던 작곡가 박시춘(朴是春)은 피란시기 대구에서 장세정으로 하여금 다시 취입시켜 음반을 냅니다.
원곡 가사를 음미해보면 거기엔 일제강점기 말 우리 농촌에서의 삶의 애환과 처연함이 마치 한지에 배어나는 먹물처럼 가슴속으로 선연히 젖어듭니다.
곡창지대가 많았던 한반도 남쪽에서 살아가던 농민들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간교한 술책에 땅을 빼앗기고 소작인으로 전락해 비참한 삶을 살아갑니다.
가난과 억압을 이기지 못한 농민들은 무작정 서울로 떠나거나, 봇짐을 싸서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바람찬 북쪽으로 정처없는 유랑길을 떠났던 것이지요. 고향산천은 변함없는데 거기 살던 토박이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됩니다. 이 모두가 식민지 농촌경제의 파산 때문이었지요.
민족 간 극단적으로 불평등했던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는 토착민의 삶을 극심하게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걸림돌이 항시 작용했으므로 토착민들의 삶의 질은 전혀 변화를 기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농민들은 절박한 생존을 위해 고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가사에는 평화롭던 농촌마을의 풍경, 양잠에 종사하던 여성들의 풍경이 보입니다. 하지만 차고 가파른 세상의 열악한 환경은 그들을 한층 더 척박한 곳으로 떠밀어 보냈습니다.
대중가요의 노랫말은 일견 하찮은 공간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향초’의 가사는 이처럼 범상치 않은 사회학적 의미를 지니고 지금도 한 시대를 강렬하게 증언해주는 귀한 역사적 자료로 다가옵니다.
현재는 장세정의 ‘고향초’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송민도가 불렀던 음원도 일부러 찾아서 한번 귀 기울여 비교 감상해보면 좋을 것입니다.
피란시절 대구에 잠시 거주하면서 암담하고 불안하기만 했던 전쟁 당시의 삶을 애달픈 음색으로 엮어낸 장세정 특유의 비감한 표현력을 더듬어보면서 오늘은 불후의 명곡 ‘고향초’를 나직하게 불러볼까 합니다.
이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