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이동순의 그 시절 그 노래⒀심연옥의 ‘시골뻐스 여차장’ 2016-09-30 농민신문

가포만 2016. 12. 13. 18:41

마지막 버스 다 탔으면 “오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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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라이 스톱 마지막 버스입니다 / 빨리빨리 타세요 차례차례로 / 나는요 시골버스 차장이구요 / 그이는 제대장병 운전수야요 / 뿌붕뿡 덜컹덜컹 타이야가 빵꾸 / 시골버스 여차장은 수줍구만요 / / 오라이 스톱 두시간 연착이요 / 차속에서 여손님 옥동자 났소 / 황소가 길을 막아 늦은데다가 / 빵꾸로 마차 시켜 끌고 왔지요 / 뿌붕뿡 덜컹덜컹 기어가는 차지만 / 시골뻐스 여차장은 친절하당께

 - 심연옥의 ‘시골뻐스 여차장’ 1·2절



 저의 고등학교 시절은 1960년대 중후반이었습니다. 등굣길엔 버스를 타야 했고, 항시 만원이었습니다. 놓치면 지각이라 우격다짐으로 올라타는데 제대로 달릴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은 바로 여차장이었습니다. 버스 옆을 손바닥으로 ‘탕탕’ 치면서 투박한 목소리로 “오라이!” 라고 외치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미처 들어가지 못한 승객들이 출입문 바깥까지 불룩한데 이를 뒤에서 손잡이를 잡고 과감한 배치기로 밀어붙이는 역할을 그녀들이 맡았지요. 운전기사도 중요한 한몫을 했답니다. 출발 직후 급제동이나 급커브를 이용해서 승객들을 재량껏 앞쪽으로 몰아댑니다. 그러면 열린 버스 문을 닫을 수가 있었지요. 돌이켜보면 아련한 옛 추억입니다.

 1970년대 들어 산업화와 고속성장의 그늘에서 버스 여차장들은 기꺼이 우리 시민들의 발이 돼주었습니다. 지금은 노년기 삶을 살아가며 이따금 지긋지긋했던 그 시절을 떠올릴 것입니다. 버스 여차장 제도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행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는 무려 3만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정말 놀랄 만한 일입니다. 아주 사라진 것은 1989년입니다. 버스 여차장은 거의 농촌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올라온 우리들의 누이였습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가족들의 생계까지도 책임지던 그야말로 씩씩한 아가씨들이었지요.

 1956년, ‘처녀뱃사공’의 작사가 윤부길은 악극단 공연을 위해 시골버스를 타고 가다 어느 여차장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가사를 착상했습니다. 바로 ‘시골뻐스 여차장(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인데요. 한 대중문화인이 절박한 생존을 위해 바쁘게 다니던 중 노랫말을 떠올리게 된다는 과정은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물론 타고난 끼도 작용했겠지만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던 윤부길의 삶과 선택은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아내의 노래’ ‘한강’ 등으로 널리 알려진 가수 심연옥이 불렀던 이 노래에는 당시 시골버스 여차장의 생생한 일과와 눈으로 보는 듯한 현장감이 그대로 전달돼옵니다.

 버스는 막차라서 더욱 붐비네요. 그래도 행복합니다. 기사가 든든한 그녀의 애인이기 때문이지요. 운전기사는 운전병 출신인데 제대해서 시골버스 운전기사로 취직했습니다. 달리던 버스는 펑크 난 타이어를 갈아 끼우느라 두시간이나 지체되었습니다. 아이구 저런! 차 안에서 출산까지 있었네요. 전통혼례를 치른 신혼부부도 승객 중의 하나입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던 1950년대 우리 한국인들의 삶과 정겨운 풍경이 고스란히 이 노래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동순<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