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강연 초청을 받아 충남 청양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가 보여 한창 신록이 아름다운 칠갑산 풍광을 감상하러 잠시 들렀는데, 거기서 돌로 만들어 세운 ‘칠갑산 노래비’를 보았습니다. 이른 아침 혼자 노래비 앞에서 뒷짐을 지고 ‘칠갑산’ 노래를 부르는 광경이 누가 보면 우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불렀던 이 한곡이 어찌 그리도 가슴에 사무치게 다가오던지요.
콩밭 매는 아낙네야 /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 무슨 설움 그리 많아 /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 칠갑산 산마루에 /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 주병선의 ‘칠갑산’ 전문
노래 한곡 때문에 칠갑산이 살고, 충남 청양이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이 노래의 창법은 흔한 트로트가 아니라 국악 가곡창법입니다. 국악의 중모리나 엇모리가락으로도 적절하게 배합이 됩니다. 아코디언이나 색소폰·장구가락과도 멋진 연주가 어우러지더군요. 가사의 문면에는 한국인의 질박한 한(恨)이 어떤 꾸밈새도 없이 마치 칠갑산자락에 걸린 안개와 비구름처럼 선연하게 펼쳐집니다.
작가는 객관적 관찰자의 시각으로 이 작품을 풀어갑니다. 등장인물은
친정어머니와 딸입니다. 비탈진 산자락에 힘들게 일군 콩밭에는 지난날 몹시 곤궁하던 시절, 이곳 칠갑산주변에 머물러 살던 화전민 일가의 삶과 애환이
서려 있습니다. 콩밭 매는 아낙네는 험한 세월을 혼자서 부대끼며 아들딸을
키워온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전형적 표상입니다. 어머니 등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고, 콩 포기는 설움의 눈물을 마시며 자라네요. 남편은 돈 벌어 오겠다며 집을 나가서 이날까지 생사를 모릅니다. 애지중지 키워온 딸은 자라서 마침내 먼 곳으로 시집을 갑니다. 하지만 그 딸은 홀로 남은 친정어머니를 산자락에
남겨두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칠갑산자락에는 떠나는 딸의
애타는 심정을 말해주는 듯 저 홀로 목이 메어 울부짖는 산새소리만 애간장을 끊어지게 합니다.
작사가 조운파 선생은 충남 부여 출신입니다. 어느 날 고향에서 버스편으로 서울을 가는데 차창에 이슬비가 내렸습니다. 차창 밖으로 비에 젖은 칠갑산을 바라보는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그 순간 노래 ‘칠갑산’의 영감이 떠올랐다고 하네요. 한국인이 살아온 가파른 현대사의 사연과
곡절이 이 노래 문맥 속에 절절히 담겼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요 ‘칠갑산’은
한국인의 민중생활사를 담아낸 한폭의 풍경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동순<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