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경산 남매공원에 세워진 방운아 노래비(오른쪽).
- 방운아의 ‘마음의 자유천지’ 전문
6·25 전쟁은 한국인들에게 어떤 실루엣으로 남아 있을까요?
세월이 흘러도 그 얼룩과 앙금은 좀체 씻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명 손실은 무려 520만명에 이르고, 이산가족 숫자는 1000만명이 넘는다고 하니 상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납니다. 민족 내부의 불신과 적대감도 모두 전쟁 때문에 비롯된 것이지요.
그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타고난 예인의 끼를 억누르지 못해 기어이 가수의 길로 접어든 사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수 방운아(1931~ )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학교를 마치고 오리엔트레코드사 전속가수 선발 콩쿠르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상주 출신의 도미·방초양 등과 함께 입상했지요. 하지만 지방 레코드사에 만족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부산으로 가서 작곡가 백영호(1920~2003)와 회동했고, 그것은 운명적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부산 미도파레코드사의 자회사였던 빅토리레코드사를 맡아 운영하던 책임자로 다수의 가요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손로원(1911~1973)이 보내온 가사에 곡을 붙여 발표한 작품이 바로 ‘마음의 자유천지’입니다.
‘봄날은 간다’의 작사가 손로원은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겨레의 고달프고 피로한 심정에 진정한 위로와 격려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취지로 만든 작품이 바로 ‘마음의 자유천지’였습니다.
작곡가 백영호는 방운아에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고, 팬들의 반응으로 잘한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윤택한 삶이라 해도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의 자유와 평화를 얻는 것이 더 낫다는 삶의 철학이 담긴 이 노래는 1950년대 후반, 전쟁의 시련과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동순<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