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구십춘광’(九十春光)의 옥잠화(하) 매일신문 2014-01-09

가포만 2017. 1. 23. 16:46

대표곡 ‘구십춘광’, 정감 어린 풍경과 정서 살린 걸작

 
 
 

옥잠화가 취입한 가요작품들의 노랫말을 전반적으로 음미해 보노라면 기생의 고단한 삶과 덧없는 기다림, 독수공방에서 쓸쓸함과 비탄에 젖은 여인의 하염없는 심정을 담아낸 것들이 많습니다. 전체 작품편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옥잠화가 남긴 노래 중에서 최고를 한 편 고르라고 한다면 우리는 ‘구십춘광’(九十春光)을 추천하기에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화강변 배를 띄워 흘러를 갈 때/ 끝없이 들리는 갈대피리 그 소리

듣고 나면 열아홉의 웃음 품은 아가씨/ 가슴에 꽃이 핀다 구비 구비 구십 리

시들었던 꽃가지가 다시 푸르러/ 청제비 춤추던 그 시절이 몇 핸고

물어보면 구름 속에 반짝이는 저 별빛/ 물결에 아롱진다 구비구비 구십 리

흘러가는 뱃머리에 달빛을 싣고/ 노래를 부를까 옷소매를 적실까

물에 띄운 고향 하늘 어머님이 그리워/ 뱃전에 편지 쓴다 구비구비 구십 리


이가실 작사, 이운정 작곡으로 만들어진 이 노래는 옥잠화의 최고 대표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십춘광’이란 한자말을 풀어서 쓴다면 그저 ‘봄 석 달’이란 말로 바꿀 수 있겠지요. 노래를 몇 차례 반복해서 듣다 보면 연분홍 복사꽃 잎이 떠서 흘러오는 강물 위에 조각배를 띄우고 거기에 몸을 실은 방년 19세 꽃다운 나이의 한 소녀가 떠오릅니다. 어디선가 갈대피리 소리가 들려오고, 강물 주변으로는 청제비가 날아다닙니다. 하루 온종일 배를 타고 흘러가는데 강물 위에는 밤하늘의 별빛이 내려와 반짝이기도 합니다.


두고 온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님이 못내 그립고 사무쳐서 뱃전에

몸을 기대어 마음속으로 그리움의 편지를 써서 공중에 띄워 보냅니다.

이런 장면들이 마치 한 폭의 한국화처럼 아련하고 정감이 넘치는 풍경으로

듣는 이의 가슴속에서 재생됩니다. 필자는 어느 봄날 오후,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툇마루에 앉아서 ‘구십춘광’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반복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싫지 않고, 질리지 않는 음색과 창법이 주는 매력이

옥잠화의 노래 속에는 들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필시 기생신분으로

살아온 과거 소녀 시절의 애달픔과 애잔함이 이 노래를 부르는 옥잠화의

 온몸과 마음에서 작용하여 이처럼 사무치게 뛰어난 효과를 이룩해내었을 것입니다.

1947년 옥잠화는 뜻밖에도 미국 교민 리차드 김이란 사람과 결혼을 해서 하와이로 떠나갑니다.


 1948년 미국 하와이에서 발간되던 ‘국민보’ 기사에 의하면 그해 6월 4일 오후 8시부터

하와이의 누우아누 청년회관 집회당에서 ‘춘향전’ 연극 전임 주최 조선무용단 공연이 열렸는데

이 무대에 무용가 김소영, 안철영 등과 함께 옥잠화가 출연한다는 ‘춘향전을

놀아 드리겠나이다’란 반가운 소식이 보입니다. 그러나 1948년 8월 국제신문

기사는 왕년의 가수 옥잠화의 학력 사칭, 다른 기생출신 가수와의 분쟁 따위의

그릇된 행실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는 보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하와이에서의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못한 듯합니다.

마침내 1968년 5월 4일 자 동아일보 기사는 옥잠화의 귀국소식을 알리고 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네 자녀와 호놀룰루에서 킴즈숍이란 상점을 운영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사정을 보도합니다.

우리는 한국의 가요사를 남달리 사랑하고 애착을 가진 팬의 한 사람으로서

옥잠화의 사생활에 대한 관심은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녀가 남긴 가요들이 오늘날 한국가요사에서 어떤 영향과 작용을 하고 있는지,

옥잠화의 노래가 과거의 어떤 전통을 이어받아 후대의 가요작품들에 계승되고 있는지

이에 대한 관심만 갖고 있을 뿐입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