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일제 말 ‘신명화’(新名花)로 불린 가수 나성려·2 매일신문 2014-01-23

가포만 2017. 1. 23. 16:52

노랫말 구절마다 짙은 이별·눈물의 페이소스

 
 
 

나성려는 해방 이후에도 여러 악극단에 초빙되어 무대에 올랐습니다. 맨 먼저 김해송이 주도한 K.P.K.악극단에 이난영, 장세정, 심연옥, 옥잠화, 서봉희 등과 함께 중요멤버로 뽑혀서 무대에 올라 극단 활동의 분위기를 뜨겁게 살려내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작품은 모두 12편입니다. 태평레코드사에서의 첫 데뷔곡은 ‘절연편지’(絶緣片紙) 입니다. 이 노래는 조경환 작사, 이재호 작곡으로 1939년 12월 태평 8658 음반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 음반의 다른 쪽 면에는 역시 동일한 작사가, 작곡가의 ‘님 찾는 발길’이 수록된 독집앨범입니다. 노랫말을 음미해보기로 합니다.


북으로 가는 차에 지친 몸을 기고/ 끝없이 한정 없이 울며 울며 부른다

고향을 떠나버린 님 계신 곳 찾는 밤/ 아득한 지평선이 어이타 이다지도

어이타 이다지도 나를 울리나(‘님 찾는 발길’ 1절)


오래오래 살아오던 고향땅을 떠나서 북행열차를 타고 만주, 혹은 연해주로 떠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겠습니까? 그들은 필시 이민이란 이름으로 떠나는 만주개척민, 막연히 살길을 찾아 만주나 중국, 혹은 시베리아로 떠나가는 유랑민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증기기관차를 타고 지평선이 보이는 만주의 광야를 달리며 향수에 젖습니다.


미래시간에 대한 불안감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2절에서 홍등과 무대라는 장소성이 등장하는 걸 보면 이 작품의 중심화자는 떠돌이악극단의 악사라든가 가수로 추정됩니다. ‘못 듣던 새소리’라든가 ‘이국의 비낀 달’ 따위의 시적 장치가 고립감과 서러움을 한층 고조시킵니다.

작품 전면에 넘실거리고 있는 것은 이별과 눈물의 페이소스입니다.


나성려가 1940년 2월에 발표한 ‘남양의 눈물’은 그녀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고려성 작사, 육오명 작곡으로 태평 8665 음반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날 저문 도문강가 외로이 서서/ 강물이 꿈을 실은 남양아가씨

불러도 다시 못 올 지난해의 꿈/ 눈물은 왜 부르나 저녁노을아

밀수출 짐을 진 채 사라진 총각/ 오늘도 우는구나 남양아가씨

한밤중 나룻가에 은은한 총성/ 애타는 가슴속을 실어만 주네(‘남양의 눈물’ 부분)


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해 보노라면 우리는 1930년대의 대표시인이었던

파인 김동환의 서사시 ‘국경의 밤’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서사시 ‘국경의 밤’에 등장하는 중심인물 순이의 남편은 두만강을 몰래 넘어다니며

장사를 하던 밀수꾼이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순이의 남편은

일본군 국경수비대 병사가 쏜 총탄에 맞아서 무참한 시신으로 돌아오게 되지요.

홀로 남은 순이의 불안한 삶이 가슴을 짓누르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나성려의 노래 ‘남양아가씨’의 1, 2절은 서사시 ‘국경의 밤’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 실감이 납니다.

그 밖에도 나성려가 발표한 노래를 보면 ‘현해애곡’(玄海哀曲), ‘내 고향은 강남’ ‘손풍금 신세’

 ‘쌍굴뚝 이별’ ‘철뚝 길 팔십 리’ ‘쪽도리 눈물’ 등 제목만 보더라도 일본, 중국,

만주, 시베리아 등지로 떠나간 유랑동포의 애타는 서러움을 다룬 작품들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명등 졸고 있는 한 많은 부두 위에서/ 마지막 고동소리 가슴이 찢어진다

잘 가란 말 한마디 입속을 감돌아도/ 안가면 안 될 사람 그 누가 막느냐(‘쌍굴뚝 이별’ 1절)

우리 대중가요는 이처럼 충직하게 그 시절 아픈 사연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는

매우 소중한 역사적 자료입니다.

가수 나성녀는 1978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