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일제 말 ‘신명화’(新名花)로 불린 가수 나성려 ① 매일신문 2014-01-16

가포만 2017. 1. 23. 16:50

‘신명화’란 말은 무대에 새로 등장한 재능 있는 신진 가수나 배우를 일컫던 말입니다.

가수 나성려(羅星麗)가 태평레코드사 전속가수가 되었던

1939년 가요 ‘님 찾는 발길’을 소개하는 가사지에서 음반사는 나성려에 대하여

이런 닉네임을 붙이고 있습니다.


절연(絶緣)-오, 청춘이 맛보는 최대의 비극이여-운명은

 또 한 개의 비극-장난을 하고 해죽해죽 달어나지 안느냐,

노숙인(露宿人)의 수첩에서 뒤저진 편지 쪽이 명화은성(名花銀星)의

목을 빌어 판 우에 빛난다-신명화(新名花) 나성려(羅星麗).


1939년 12월 ‘절연편지’부터 1940년 8월 ‘쪽도리 눈물’까지 9개월 동안

 태평레코드사 전속가수로 총 12곡을 발표한 어엿한 가수지만 험한 세월에

출현한 그녀가 대중들에게 다가갈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식민통치자들은 가요라는 문화적 도구가 주민들의 의식을

마비시키거나 중심을 교란시키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에 출현한 가수 나성려가 발표한 노래 12곡은

거의가 주로 서민적 삶의 이별과 눈물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다른 시절의 이별이나 눈물과는 확연히 다른 때였습니다. 나성려의 활동시기를

어디 한번 들여다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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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9년 1월 14일에는 이른바 ‘조선징발령’(朝鮮徵發令) 세칙이 공포 시행되었습니다.

징발이란 사람이나 물자를 제도적 강압적으로 거두고 모은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인력과 물자를 강제로 수탈하는 법령을 만들어

버젓이 발표하고 도둑질을 해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법령을 기초로 해서

일제는 그들이 만든 괴뢰정권인 만주국으로 이른바 개척민이란 이름을 붙여

식민지 백성들을 3천 명 이상 떠나보내었습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이

 수탈해간 토지를 대신 경작하던 조선 농민들이 소작료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자주 불만을 제기하자 일제는 ‘소작료 통제령’(小作料統制令)을 공포 시행했던 것입니다.

기야 ‘창씨개명’(創氏改名)이라는 세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괴상망측한 제도를 만들어 모든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야심 찬 동화정책을 펼치기까지 했었지요. 그러니 이 시대를 광기의 시대,

분노의 시대라 규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수 나성려의 본명은 김숙희(金淑姬)입니다. 나성려는 가수로서의 예명입니다.

하지만 태어난 곳과 생년을 확인해줄 자료는 전혀 없습니다.

 그 까닭은 나성려가 아마도 권번이나 기타 밑바닥 계층의 삶을 살다가

태평레코드사 책임자들에 의해 가수로 발탁이 된 것으로 추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수로서의 활동기간도 1939년 12월부터 1940년 8월까지 불과 아홉 달에 불과합니다.

 무대에서의 자기표현력이 뛰어나서 1940년 후반부터는 주로 악극단 무대로

활동의 터전을 옮겨간 듯합니다.

가수 나성려의 노래를 들어보면 실실이 흐느적거리며 휘감는 듯한 창법에다

혓바닥을 낮게 깔고서 애교를 부리는 듯한 비음이 그녀 노래의 분위기를

독특한 개성으로 돋보이게 하지요. 사진으로 대면하는 나성려의 얼굴에서

그리 고운 자색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사람 좋은 후덕함이 풍겨나는 인상으로 보입니다.


1940년 2월부터 3월까지 나성려는 태평레코드사에서 기획한 태평연주단

북선 코스 공연으로 만주 일대를 유랑하며 펼치는 공연에 참가하게 됩니다.

북만주의 목단강에서 사흘간 공연할 때는 백년설, 최남용, 이은파, 고운봉, 송낙천,

금사향, 진방남, 손영옥, 맹예랑 등 태평레코드사를 대표하는 전속

대중연예인과 함께 출연해서 그곳 동포들의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나성려는 일제강점기 말 오케레코드사에서 기획 운영했던 조선악극단

무대에도 초청을 받아 올랐을 정도로 악극계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특히 조선악극단의 중심 메뉴였던 인기프로 ‘흥부와 놀부’ 공연에서

나성려는 송달협, 이종철 등 선배들과 함께 트리오로 무대에 올라

인기를 독점했다고 합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