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李東洵 교수의 歌謠 이야기 (11)-고물상에서 찾아낸 金順男의 광복 기념 가요 월간 조선 2001년 12월호

가포만 2017. 2. 10. 20:06
고물상에서 찾아낸 낡은 음반

  

1980년대 후반의 어느 가을. 나는 충북 청주의 어느 고물상에서 낡은 음반을 뒤지고 있었다.

음반은 다른 허섭쓰레기들과 함께 고물상의 맨 구석에 쌓여 있었는데,

워낙 먼지가 많아서 건드릴 때마다 코가 매울 정도였다.

그 가운데서 나는 특이한 상표의 SP음반 두 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홍빛으로 인쇄된 수탉 한 마리가 지구를 딛고 서서 홰를 치며 새벽을 알리고 있었다.

아마도 8·15 광복 직후에 발매된 광복 기념 가요로 여겨졌는데,

제작회사는 「리베라레코드 본사 발매」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사정인지 그 레코드회사는 일본 도쿄 정교(淀橋)

호총정(戶塚町) 1-355번지이고, 이탈리아 말처럼 여겨지는 「KOMER CA MARKO」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당시 국내의 경제 사정이 너무도 열악하여

일본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직후에도 그 지긋지긋한 일본의 힘과

기술을 여전히 빌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SP음반 수집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 음반의 출현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음반을 구입해 와서 오래 찌든 때와 먼지를 깨끗이 닦아낸 다음

축음기에 걸어놓고 태엽을 감았다. 정말 몇십 년 만에 음반의 홈 사이로

바늘이 지나가 보는지라 회전이 힘들게 느껴졌고, 템포가 점점 느려지더니

급기야는 사운드박스를 제 몸 위에 올려놓은 채 그대로 정지하고 말았다.

나는 혼자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음반을 들어내어서 상표 안의

노래 제목과 작사가, 작곡가, 가수의 이름 따위를 자세히 검토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네 편의 노래가 모두 金順男(김순남)이 작곡한 작품이 아닌가? 
  
첫 번째의 노래는 「해방의 노래」(김순남 작사·작곡, 장비 노래)였고,

조련관현악단 지휘로 李景洲(이경주)란 분이 지휘를 맡았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음반의 고유번호는 301A 746이었다.

두 번째의 노래는 「농민가」(박아지 작사, 김순남 작곡, 장비 노래)였고,

세 번째의 노래는 「독립의 아침」(이주홍 작사, 김순남 작곡, 진예훈 노래),

맨 마지막의 노래가 「우리의 노래」(이동규 작사, 김순남 작곡, 진예훈 노래)였다. 
  
 朴芽枝(박아지), 李東珪(이동규) 등의 작사자들은 광복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그룹에서 활동하다가 北으로 올라간 사람들이었고,

그 점에 있어서는 金順男도 마찬가지였다. 노래를 부른 張飛(장비),

陳禮壎(진예훈) 등의 가수 이름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李周洪(이주홍)은 向坡(향파)라는 아호를 쓰는 분으로 광복 후 부산에서

거주하며 주로 아동문학 쪽에서 많은 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문학인이었다.

그도 처음엔 좌파에서 활동하였었다.
 
 
  「높이 들어라 자유의 깃발, 크게 불러라 해방의 노래」
 
 
  네 편의 작품이 모두 광복을 기념하여 광복 직후에 제작되었던 음반이었고,

또 그것을 모두 민족음악가 金順男이 곡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나에겐 이채로웠다.

당시 金順男에 대해서는 전기적 생애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고,

다만 그가 고통스런 민족의 삶 속에서 찾으려 애를 썼던 예술가였다는

단편적 지식만 들어서 알고 있던 상태였다. 나는 金順男의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왈칵 일었다. 그래서 제대로 회전조차 하지 못하는 음반의 중심을

손가락으로 일부러 돌리는 방법으로, 이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겨우 전체

노래의 분위기를 어렴풋이 느껴볼 수 있었다. 
  
 < 조선의 대중들아 들어보아라/ 우렁차게 들려오는 해방의 날을

/ 시위자가 울리는 발굽 소리와/ 미래를 고하는 아우성 소리
 
  노동자와 농민들은 힘을 다하여/ 놈들에게 빼앗겼던 토지와 공장

/ 정의의 손으로 탈환하여라/ 제 놈들의 힘이야 그 무엇이랴---「해방의 노래」>
 
  이 노래의 전주곡 앞부분에서는 광복 직후의 감격과 흥분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행진곡 풍의 씩씩하고

우렁찬 곡조가 역동적으로 전개되는데, 그 속에는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가득 메운 감격의 행렬이 보인다. 그날의 그 벅찬 광경이

하나의 실루엣으로 떠오른다. 이러한 전주곡이 한 동안 전개되다가

노랫말이 들려오는데, 이 가사 속에는 당시 민족적 지식인들의 웅변적 담론이

노랫말 속에 또박또박 전개된다.
 
  하지만 이 노래는 이념의 단순 표방이 아니라, 우리가 당장 착수하고

실천해야 할 민족국가 건설 및 그 사명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는

구체적 각성이 가슴속에 고동쳐 온다. 일제 식민통치자들은 이제

광복을 맞은 우리 민족의 총체적 지향 앞에서 무력하기만 하다. 「

제 놈들의 힘이야 그 무엇이랴」라고 힘주어 말하는 대목에서는

어떤 통쾌감마저 느껴진다. 
  
  이어서 「독립의 노래」를 들어 보았는데, 어떤 부분은 몇 차례 반복해서

경청해도 그 발음을 종내 확인할 수 없는 곳이 두어 곳 있었다.

그런 난관을 무릅쓰고 채록해 본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간악한 채쭉 밑에 울던 사십 년/ 얼어진 이 강산에 새봄이 왔네

/ 남녘의 모진 ○도 얽혔던 ○이/ 평화의 새 꽃송이 웃으며 핀다

/ 높이 들어라 자유의 깃발/ 크게 불러라 해방의 노래
 
  내 살림 내 것으로 사는 이 세상/ 햇빛도 더욱 밝다 조국의 아침

/ 세계의 활개 솟을 우리 대조선/ 이로써 단결하야 굳게 세우자

/ 높이 들어라 자유의 깃발/ 크게 불러라 해방의 노래>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까지 만세만세」
 
 
  광복의 감격과 표출이라는 측면에서는 이 노래가 앞의 작품보다 훨씬

더 강한 느낌으로 전달되어 온다. 노랫말에 정리된 그대로 한반도는

일제의 「간악한 채쭉」 밑에 울고 있었고, 이 강산은 오랜 식민통치의

유린 밑에서 온통 얼어붙어 있었다. 이 노래의 가사 속에서 작사자는

새봄과 활짝 핀 봄꽃 이미지를 채찍과 겨울에 대비시킴으로써

광복의 의미를 한층 선명하게 살려내고 있다.

사실 이런 부류의 이미지 효과는 이미 沈薰(심훈)과 李陸史(이육사)를

비롯한 여러 詩人들에 의해서 광복 이전부터 제출되고 있었으므로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당시 左右 합작으로 「해방기념시집」이란 단행본이 출간되었는데,

이 시집의 전체 분위기와 해방 기념 가요의 감성적 빛깔은

서로 상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碧初(벽초) 洪命熹(홍명희)의

詩 작품으로 「눈물 섞인 노래」란 것이 있는데, 오직 감격이라는

단순 감정의 표출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 아이도 뛰며 만세! 어른도 뛰며 만세!/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까지 만세 만세

/ 산천도 빛이 나고 해마저도 새 빛이 난 듯/ 유난히 명랑하다>
 
  너무 감격스러움에 휩싸이게 되면 아예 동심에 가까운 백치 상태로

돌아간다는 말이 이를 두고 이르는 듯하다. 여기엔 아무런 고통과 번민,

갈등과 시련의 경험이 내포되어 있지 않다. 민족의 대표적 지식인 중의

한 분이 제출한 작품으로는 지극히 단순하고 단조롭다.

감격의 방법론적 표출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이주홍과 박아지,

이동규의 음반 취입 노랫말보다 단연코 뒤떨어진다.

광복 이후의 구체적 대응 자세에 대한 언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2절의 서두인 「내 살림 내 것으로 사는 이 세상

/ 햇빛도 더욱 밝다 조국의 아침」이란 대목은 지금 읽어도 다시금

벅찬 느낌이 치솟는다. 우리는 얼마나 정치적 경제적 자립을 꿈꾸어 왔던가?

비록 일제가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간 황폐한 공간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일을 우리 스스로가 결정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바로 그것이 광복의 참된 의미가 아니었던가. 이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