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李東洵 교수의 歌謠 이야기 妓生을 노래하다 월간조선 2001년 8월호

가포만 2017. 2. 7. 20:49

시인 白石의 연인 妓生 진향
 
 
  나는 일찍이 朝鮮券番(조선권번) 출신의 한 妓生(기생)을 만났었다.
 
  기명은 眞香(진향). 시인 白石(백석)의 연인이었던 분.

말로만 듣던 妓房(기방)의 습속과 범절을 낱낱이 들려 주었던 여성.

이제 그녀는 이 세상에 없다. 그와 교유했던 지난 십여 년 동안의 추억들은

이제 애틋하고 처연한 그림으로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연로한 妓女와 더불어 함께 다녔던 강화도, 행주산성, 송광사,

갓바위 등의 이끼 낀 길에는 가녀린 한숨과 애잔한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다.

나는 오늘 妓女 진향과 더불어 다녔던 호젓한 길을 혼자 거닐어 보며,

그녀가 도란도란 들려 주었던 이야기를 조용히 떠올려 본다.
  
 기생은 가무를 갖추고 예의범절과 행실 조행이 단정해야 하므로

사교계에서는 기생을 일컬어 「解語花(해어화)」, 즉 말귀를 알아듣는

꽃이라 하였다. 이 말은 뛰어난 재능과 능숙한 대화에다 예능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일 것이다. 기생의 服色(복색)은 남빛 끝동, 자주 고름,

자주 깃을 모두 갖춘 삼호장 저고리를 입었다.


치마 말기는 꼭 오른쪽으로 돌려서 매었다. 이런 한복 차림을 하려면

어깨가 집어다 놓은 듯 좁아야 하고, 가는 허리가 버들가지같이 낭창낭창하고,

개미허리처럼 잘록하며, 무엇보다도 발 맵시가 고와야 한다고 하였다.

옛 가요 「첫사랑 푸념」(천아토 작사, 김교성 작곡, 선우일선 노래)은

당시 기생들의 服色과 관련된 자료를 보여 주고 있어 이채롭다. 
  
〈연옥색 안주 항라 끝동 저고리/ 쪽마루 양지 쪽에 곱게 차리고

/ 옷고름 달아 주며 수줍어 하던/ 조각보 색색이보 푸념진 색보

/ 까치가 울 적마다 보고 싶데다〉 
  
 가요계의 초창기에는 여성 가수를 찾기 어려웠는데,

이때 대안으로 나선 것이 바로 기생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처음에는 대개 거절하였다.

『비록 박복한 팔자를 타고나서 이 짓을 하고 있지만 광대패에는

차마 끼일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거절 이유였다.

처음에는 배우들이 幕間(막간)가수로 노래를 부르다가

점차 기생가수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들은 주로 민요의 대중적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신민요를 불렀다.
  
  
  妓生 출신 가수들
 
 
  기생 출신 가수들로는 「꽃을 잡고」, 「능수버들」,

「조선팔경가」, 「동그랑 땡땡」, 「망향의 가을밤」, 「주릿대 치마」,

「압록강 뱃놀이」 등을 불렀던 鮮于一仙(선우일선)이 있었다.

朴芙蓉(박부용)은 「노들강변」을 불러서 큰 인기를 모았고,


王壽福(왕수복)은 「뻐꾹새」, 「울산타령」, 「어부사시가」,

「봄맞이 아리랑」 등을 불렀다. 
  
 그녀는 한때 작가 李孝石(이효석)의 연인이었으며 분단 과정에서

월북하였고 북한에서도 왕성한 음악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당시 선우일선의 노래를 「노을 비낀 호수」에 비교할 때

왕수복의 노래는 「설레이는 바다」로 비유되었다고 한다(최창호,

「민족수난기의 대중가요사」, 일월서각, 2000).

이밖에도 「앞 강물」, 「오동나무」를 불렀던 李銀波(이은파)와

王草仙(왕초선) 金福姬(김복희), 金雲仙(김운선), 李花子(이화자) 등이 있었다.  
당시의 기생 풍속도를 가장 실감나게 다룬 노래는

「모던 기생 點告」(처녀림 작사, 김송규 작곡, 김해송 노래)이다.
 
  〈하이요 아라라욥/ 찌렁 찌렁 찌렁 찌렁 인력거가 나간다

/하이요 아라아라욥 찌렁 찌렁 찌렁 찌렁 찌렁 기생아씨가 나간다

/ 에헴 비켜라 안 비키면 다쳐 /헤이 꽃 같은 기생아씨 관상 보아라

 /뾰죽 뾰죽 오뚝이 기생 /재수 없는 병아리 기생

/소다 먹은 뎀뿌라 기생 /제 멋대로 쏟아진다

 /햇햇햇 명월관이냐 국일관이냐 천행원 별장이냐 음벽정이냐

 /하이요 아라 아라욥〉 
  
 이 노랫말 속에는 1930年代의 기생 사회의 구체적인

그림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기생을 태운 인력거의 경적과

인력거꾼의 호령소리가 있다. 더불어 여러 기생들의 초상이 보인다.

하야멀쑥 야사이 기생, 다쿠앙 기생, 동서남북 시가쿠 기생,

꼬불꼬불 아리랑 기생, 날아갈 듯 비행기 기생, 하늘하늘 봄버들 기생 등.

모두 일본화하는 세태를 꼬집고 풍자한다.  
  
당시의 유명한 요정들도 가사에 그대로 등장하는데 명월관, 국일관,

천행원, 음벽정, 식도원, 조선관, 태서관, 송죽원, 남산장, 백운장,

가겟츠(花月) 별장, 동명관 등의 이름들은 식민지시대의 문화사와

관련된 흥미 있는 자료이다. 그 설립 배경과 내력에 대해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기생의 삶과 운명을 자조적으로 다룬 노래로서는 단연코

「화류춘몽」(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이화자 노래)이 으뜸일 것이다. 
  
  〈꽃다운 이팔 소년 울려도 보았으나/ 철없는 첫사랑에 울기도 했더란다

/ 연지와 분을 발라 다듬는 얼굴 위에/ 청춘이 바스러진 낙화 신세

/ 마음마저 기생이란 이름이 원수다// 점잖은 사람한테 귀염도 받았으며

/ 나 젊은 사람한테 사랑도 했더란다/ 밤늦은 인력거에 취하는 몸을 실어

/ 손수건 적신 적이 몇 번인고/ 이름조차 기생이면 마음도 그러냐

// 빛나는 금강석을 탐내도 보았으며/ 겁나는 세력 앞에 아양도 떨었단다

/ 호강도 시들하고 사랑도 시들해진/ 한 떨기 짓밟히운 낙화신세/

 마음마저 썩는 것이 기생의 도리냐〉 
  
 첫 취입은 이화자였으나, 분단 이후 이 노래가 월북 작사자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개작하였고 黃錦心(황금심)이 다시 취입하였다.

「春宵花月(춘소화월)」(조경환 작사, 전기현 작곡, 백년설 노래)도

동일한 부류의 노래이다. 주렴, 가야금, 달빛, 구곡간장 맺혀진 설움,

 칠보단장 등이 작품 속의 소도구로 등장하고 있다. 
  
기생의 삶을 다룬 노래로 또 하나 우리의 눈길을 끄는 곡은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이고범 작사, 김준영 작곡, 심연옥 노래)이다.

이 노래도 改詞(개사)가 되었지만 원래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사랑에 속은 몸이 돈에 또 울고/ 무엇을 믿고 살리 아득하구려

/ 짓궂은 비바람에 고달픈 신세/ 거리에 핀 꽃이라 괄세를 마오

// 사랑도 믿지 못한 쓰라린 세상/ 무엇을 믿으리까 아득하구려

/ 억울한 하소연도 섧은 사랑도/ 가슴에 끌어안고 울고 갑니다

// 내일의 꿈길이 꽃피는 날에/ 무엇이 아까우랴 거리끼겠소

/ 세상에 검은 구름 개이는 그 날/ 마음에 고인 설움 가시어지리〉 
  
흔히들 기생들이 활동하는 공간을 花柳界(화류계)라고 말한다.

길가나 울타리에 피어 있으므로 아무나 꺾을 수 있는 꽃이라 해서

路柳墻花(노류장화)로도 일컬었다. 그 박복한 삶에서 설움과 괄시를 읽어내고,

거짓 약속에 속아서 우는 원망과 억울함이 기생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생의 표상이 일제 강점기에서 나라 잃은 백성의

서러운 처지와 심정에 비견된 적도 있었으니


「눈물의 백년화」(박영호 작사, 전기현 작곡, 백년설 노래)가 바로 그것이다.
 
  〈다홍아 너만 가고 나는 혼자 버리기냐

/ 너 없는 이 천지는 불꺼진 사막이다 달 없는 사막이다 눈물의 사막이다

/ 다홍아 다홍아 다홍아 아 다홍아

// 두 바다 피를 모아 한 사랑을 만들 때는

/ 물방아 돌아가는 세상은 봄이었다 한양은 봄이었다 우리도 봄이었다

/ 다홍아 다홍아 다홍아 아 다홍아〉
 
 
  나라 잃은 백성의 서러운 처지에 비견 
  
  
 이 노래의 2절을 주목해 보시길 바란다.

「두 바다 피를 모아 한 사랑을 만들 때는」이란

대목에서는 일제의 한반도 강제 병합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