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李東洵 교수의 歌謠 이야기(6) - 한국의 漫謠 월간조선 2001년 6월

가포만 2017. 2. 2. 19:12
해학·풍자 곁들인 익살스런 웃음

  「漫謠(만요)」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노래가 있다. 漫曲(만곡), 流行漫曲(유행만곡)으로 불려지기도 했던 이 노래는 한국의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출현한 매우 특이한 노래로 당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주었다. 대개 슬픔이면 슬픔 한 가지로, 혹은 그리움이면 그리움 하나만으로 노래의 전편을 구성해 가는 데 반해, 이 漫謠의 경우는 해학과 풍자를 곁들인 익살스런 웃음의 묘사를 통하여 현실의 모순과 비극성을 공감하게 하는 묘한 효과를 지녔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漫謠라는 형식이 유행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그 첫번째로 강압적인 시대 분위기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대중의 집단적 감정이 순조롭게 여과되지 못하고 억압적 환경 속에서 누적될 때 냉소와 풍자, 뒤틀림, 정상적 논리의 전복 등의 방법들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런 과정이기 때문이다.
 
  漫謠를 즐겨 부른 가수로는 金海松, 朴響林, 金貞九, 金龍煥 등을 들 수 있다. 오케레코드에서 발매한 漫謠風의 노래로 「감격의 그날」(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 「천리춘색」(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 김해송·이은파 노래), 「청춘삘딩」(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 김해송·남일연 노래), 「모던기생 點告」(처녀림 작사, 김송규 작곡), 「개고기 主事」(김다인 작사, 김송규 작곡)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청춘삘딩」은 말라깽이 모던보이, 배불뚝이 월급쟁이, 안짱다리 마네킹 걸, 텁석부리 대학생, 사팔뜨기 웨이트리스, 눈딱부리 신문기자, 뻐드렁니 교환수 등이 묘사의 대상으로 떠올려진다. 그들은 대개 1930년대 서울 장안의 전형적인 젊은 계층들이다. 얼른 읽기엔 서구 외래문화에 대한 신선한 수용의 자세처럼 보이지만 漫謠의 행간에는 약간의 경계심과 비아냥거림도 함께 스며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모던기생 點告」는 더욱 구체적인 풍자가 들어 있다. 
  
 < 하이요 아라아라욥/ 찌렁 찌렁 찌렁 찌렁 인력거가 나간다/ 하이요 아라아라욥/ 찌렁 찌렁 찌렁 찌렁 찌렁 기생아씨가 나간다/ 에헴 비켜라 안 비키면 다쳐 헤이/ 꽃 같은 기생 아씨 관상 보아라/ 허여멀쑥 야사이 기생 열다섯 자 다꾸앙 기생/ 동서남북 시가꾸 기생 제멋대로 쏟아진다 햇 햇 햇/ 식도원이냐 조선관이냐 태서관 별장이냐 송죽원이냐/ 하이요 아라 아라욥 ― 「모던기생 點告」 2절>
 
 
 
 「개고기 主事」
 
  실제로 인력거를 타고 달리는 실감마저 든다. 또한 당시의 대표적인 유명 요릿집은 모두 이 노랫말에 등장한다. 명월관, 국일관, 천행원, 음벽정, 식도원, 조선관, 태서관 별장, 송죽원, 남산장, 백운장, 가겟츠별장, 동명관 등의 열거가 바로 그것이다. 일제시대 생활풍속사의 한 단면을 우리는 이 漫謠의 가사를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모던 妓生」이란 바로 식민지 체제 하에서의 일본식 妓生을 지칭하는 듯하다. 결국 「모던 기생」의 실질적 의미는 바로 일본 제국주의가 아니었을까. 그의 또다른 작품 「개고기 主事」도 만만한 작품이 아니다. 거기엔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고 혼자 자기 중심적으로 삶을 냉소하며 함부로 살아가는 무자각한 대중들에 대한 강한 비판이 들어 있다.
 
 < 아, 떨어진 중절모자 빵꾸난 당꼬바지/ 꽁초를 먹더래도 내 멋이야/ 댁더러 밥 달랬소 아 댁더러 옷 달랬소/ 쓰디쓴 막걸리나마 권하여 보았건디/ 이래뵈도 종로에서는 개고기 주사/ 나 몰라 개고기 주사를/ 뭐야 이건 ― 「개고기 主事」 1절〉
 
  이런 노래를 부른 金海松은 작곡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金松圭는 바로 그의 다른 예명이다. 함경북도 주을 출신의 가수 朴響林도 여러 편의 漫謠를 남기고 있는 가수이다. 전화가 아직 일반화되기 전에 물질 문명에 대한 경계심과 거기에 깃들여있는 식민지적인 요소에 대한 거부감이 노골적으로 깔려 있는 작품이 바로 「전화일기」다. 
  
 < 모시 모시 하 모시 모시 본국 이칠팔사번/ (남) 헬로우 헬로우 당신이 정희씨요/ (여) 네 네네 홧 이즈 유어 네임/ (남) 엊저녁 속달 편진 보셨을 테지요/ (여) 아! 약 광곤줄 잘못 알고 불쏘시갤 했군요/ (남) 저응 저응 아이 러브 유/ (여) 아이고 망칙해라 아이 돈 노 빠이 빠이/ (남) 아차차차차 으응 으응 으응 저 끊지 말어요 저저저저 조또마테/ (합창) 끊으면 나는 싫어 나는 몰라요. ― 「전화일기」 1절〉
 
  박향림의 또 다른 漫謠로는 「오빠는 풍각쟁이」(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 「찻집 아가씨」(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를 들 수 있다. 원래 「풍각쟁이」란 악기를 들고 다니며 구걸하던 유랑 연예인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당시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에 대한 일종의 비칭으로 부르던 말이기도 하다.
 
  漫謠 형식에서 가장 최고의 수준을 지니고 있는 가수로는 金龍煥과 金貞九 형제를 들 수 있을 듯하다. 함경남도 원산 출생의 그들 형제는 남긴 작품도 많을 뿐만 아니라, 漫謠 형식이 요구하는 내적 외적 기준에 완전히 부합되는 노래를 불렀다. 특히 金龍煥은 바이올린과 트럼펫 등의 각종 기악 연주에 능란하였고, 작곡과 연극 쪽에서도 적극적 활동을 펼쳤다. 그들의 타고난 서민적 聲音의 바탕이 그것을 도와 주었던 것 같다. 「낙화유수 호텔」(화산월 작사, 조자룡 작곡, 김용환 노래)을 듣고 있노라면 왜 그리도 삶의 슬픔이 눅진하게 묻어나는지. 
  
 < 우리 옆방 음악가 신구잡가 음악가/ 머리는 상고머리 알록달록 주근깨/ 우스운 가스불에 봐요링을 가져와/ (대사) 자 장구타령 노랫가락 개성난봉가 뭔가 없는 건 빼놓고 다 있습니다 에 또― 눈물 콧물 막 쏟아지는 낙화유수 자 단돈 십전 단돈 십전/ 싸구려 싸구려 창가책이 싸구려 창가책이 싸구려 ― 「낙화유수 호텔」 1절〉
 
 
 
 金龍煥·金貞九 형제의 만요
 
  위에 인용한 노래는 「신구잡가」라는 제목의 노래 가사 책을 팔고 있는 노점 서적상을 그리고 있다. 때로는 바이올린 따위를 서툴게 연주하기도 한다. 2절은 무성영화 변사의 삶을 다루고 있으며, 3절은 밤거리에서 엿 목판을 들고 다니는 고학하는 대학생을 그린다. 이 노래의 제목이 「낙화유수 호텔」로 되어 있는 까닭은 이들 뜨내기 삼류 인생들이 머물고 있는 하숙집을 지칭하고 있는 듯하다.
 
  金龍煥의 약간 쉰 듯한 濁聲(탁성)이 이 노래의 효과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김용환의 漫謠는 그 분량이 적지 않다. 동해의 정어리잡이를 그리고 있는 「정어리 타령」(김성집 작사, 조자룡 작곡), 1930년대의 이른바 황금광 시대에 내포되어 있는 온갖 모순과 부조리를 다루고 있는 「눈깔 먼 노다지」(김성집 작사, 조자룡 작곡), 고용된 머슴에게 딸을 주겠노라고 거짓말을 해놓고 그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사악한 지주를 그리고 있는 「장모님전 항의」(김성집 작사, 김양촌 작곡), 1930년대의 룸펜을 다루고 있는 「이 꼴 저 꼴」(김광 작사, 김탄포 작곡) 등이 그의 대표적인 漫謠曲들이다. 
  
  아우 金貞九는 漫謠에 더욱 적절한 소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바다의 와팟슈」(박영호 작사, 박시춘 작곡)에서부터 이미 漫謠 歌手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국의 미인에게 넋이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