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李東洵 교수의 歌謠 이야기(5) 鐵道, 슬픔과 기쁨의 길 월간조선 2001년 5월

가포만 2017. 2. 2. 19:09
기관차를 통해 본 인간의 삶

  港口(항구)가 머나먼 바다로 떠나는 분기점이라면 停車場(정거장)은 대륙으로 이동하는 시발점이었다. 선박은 지정된 항로를 따라 물 위를 유유히 떠나가지만 기관차는 일정한 궤도 위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 鐵道(철도)의 역사는 19세기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1814년 스티븐슨에 의한 증기기관차 발명이 그것이다.
  
  외부 세계에 대한 동경, 따분한 현실로부터의 탈출, 나야말로 너희들의 그 세속적 소망을 보장해 줄 수 있어! 미련은 무슨 썩은 짚단이야? 자! 겁내지 마! 젠장! 와서 타라구! 모두 뿌리치고 화끈하게 떠나버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철도에서 들려오는 이러한 소근거림에 속아서 마음의 중심을 잃고 무작정 열차에 올라 타버렸던가? 그리곤 두 번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던 것인가. 과거 식민지 시절, 철도는 무수히 많은 이 땅의 백성들을 끌고 갔고 또 엄청난 물자들을 빼앗아 갔다. 이처럼 초창기 철도는 눈물에 젖은 운송수단으로 출발하였다. 철도가 대중가요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무렵이었다.
 
  〈푹푹칙칙 푹푹칙칙 뛰이/건넌다 검정 다리 달빛 어린 응 철교를/고향에서 못 살 바엔 아 타향이 좋다/달려라 달려 달려라 달려/크고 작은 정거장엔 기적 소래 남기고/찾아가는 그 세상은 나도 나도 나도 나도/모른다 모른다
 
  「울리는 滿洲線」(조명암 작사, 손목인 작곡, 남인수 노래)〉
 
  이 노랫말의 후반부는 어떤 비탄과 自嘲(자조)가 섞인 어투가 보인다. 머나먼 타관 객지를 향해 떠나가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불안하고 불투명할 뿐이다. 문제는 그 移住(이주)가 결코 자의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일제 식민통치의 착취와 강압에 의한 내몰림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표면상으로는 「이주」였다. 그러므로 「고향에서 못 살 바엔」이라는 대목과 「찾아가는 그 세상은 나도 모른다」라는 대목을 우리는 다시금 유의해서 읽어야만 한다. 
  
  작사가 趙鳴岩(조명암)은 歌謠詩(가요시)의 제한된 통로를 민중 계몽의 공간으로 십분 활용하려 한 흔적이 이런 데서 엿보인다. 조명암은 노랫말의 작사에서 철도 이미지를 즐겨 채택하였다.
 
  「人生線」이란 노래를 살펴보자. 
  
  〈똑같은 정거장이요 똑같은 철길인데/시름길 웃음길이 어이한 한 길이냐/인생이 철길이냐 철길이 인생이냐 철길이 인생이냐/아득한 人生線에 달이 뜬다 해가 뜬다
 
  「人生線」(김다인 작사, 이봉룡 작곡, 남인수 노래)〉
 
  이때 金茶人은 조명암의 또 다른 필명이다. 기차가 통과하는 역과 철도는 동일하지만 슬픔과 기쁨은 모두 이 철도를 통하여 찾아왔다. 철도가 개통된 이후의 한국 현대사에서 철도는 기쁨보다도 슬픔과의 媒介(매개)가 더욱 많았던 공간이었다. 식민지시대 후반기의 離農民(이농민)들의 집단적 이주가 모두 철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전국의 정거장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지는 이별의 통곡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이른바 志願兵(지원병)이라는 미명으로 전쟁터를 향해 끌려가던 청년들이 피눈물을 뿌리며 가족들과 헤어진 곳도 정거장이었다. 광복이 된 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부모 형제가 바로 이 철도를 이용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른바 「歸還同胞(귀환동포)」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린 곳도 이 정거장이었다. 다음의 노래 두 곡에서도 우리는 당시 눈물의 흔적을 발견한다.



식민지 시대 모순을 반영한 노랫말들
 
  〈불꺼진 책상머리 울다가 말다가/비몽사몽 떠나서는 滿洲線 이천 리/비 오는 타관역에 헤어진 설움을/삼 년이 지난 이날 이때/아 서신 한 장도 없구나
 
  「꿈꾸는 他關驛」(이성림 작사, 김해송 작곡, 이난영 노래)〉
 
  〈눈물을 벼개 삼아 하루 밤을 새고 나니/압록강 푸른 물이 창 밖에 구비치는가/달리는 국경열차 뿜어내는 연기 속에/아아 어린다 떠오른다 못 잊을 옛사랑이
 
  「國境列車」(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송달협 노래)〉
 
  과거 우리의 현대사에서 철도는 이별, 눈물, 유랑, 슬픔 따위의 대명사였다. 모든 것을 실어 나르는 철도를 통하여 우리는 주체적인 것, 토착적인 것을 떠나보내었고, 외래적인 것, 이질적인 것이 대신 흘러 들어왔다. 단순한 사랑을 노래한 듯 보이는 노랫말도 새로운 관점에서 면밀히 분석해 보면 식민지의 시대적 屈曲(굴곡)과 矛盾(모순)을 반영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다음 노래가 바로 그러하다.
 
  〈멋모르고 받은 사랑이 병을 샀구려/구름다리 우르릉 우르릉 밤차는 간다마는/병들어 썩은 눈물 실어보낼/아 -- 貨物車는 언제 오나
 
  「마음의 貨物車」(조명암 작사, 손목인 작곡, 이화자 노래)〉
 
  이 노래의 전반부에서 들려오는 구름다리의 「우르릉 우르릉」 하는 소리는 바로 식민지의 不條理(부조리) 사회에서 들려오는 不安의 소리, 바로 그것이었다. 이 땅의 백성들에게 일본에 의한 식민 통치는 그야말로 「멋모르고 받은 사랑」에 불과한 것이었다. 소위 保護國(보호국)으로서의 일본에게 어떤 기대와 희망을 걸었던 사람도 다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백성들로 하여금 「병들어 썩은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어 버렸고, 급기야는 오지 않는 희망의 화물차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모습으로 설명될 수 있다



逸脫이 주는 쾌감과 향수
 
  당시에 만들어진 노랫말을 평가하면서 결코 단순한 시각으로만 바라보지 말자. 작사가 조명암은 노랫말이라는 대중문화의 매체와 공간을 통하여 무엇인가 자신의 가슴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의역해서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대체로 시대적 울분과 관련된 것이었고, 민중의 답답한 가슴과 일맥 상통하는 내용들이었다. 다음 노랫말도 면밀히 검토해 보시기를 바란다. 

  
  철도와 관련된 상당수의 노래들이 이처럼 만주 지역을 배경으로 다룬 것이 많다. 그것은 민족적 유랑의 설움과 운명의 고달픔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철도는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동시에 새로운 고통을 실어오는 근원이기도 했다. 「鄕愁列車」의 노랫말은 逸脫(일탈)이 주는 쾌감과 향수를 다루고 있다.
 
  〈천리라 달리는 눈이 쌓인 국경선/이 밤은 빼치카의 불이 그리워/털외투로 몸을 싸고 눈을 감은 창머리/어린다 내 고향이 눈에 어린다
 
  「향수열차」(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이인권 노래)〉
 
  국경을 넘어가면 곧바로 이국 땅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여전히 흰옷 입은 겨레들이 살고 있었다. 간도, 사잇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가서 새로운 삶의 뿌리를 내리려고 안간힘을 쓰던 곳인가? 그래서 간도 땅의 나무들은 한민족의 눈물을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