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단장의 미아리고개’의 가수 이해연 2 2014-04-24 매일신문

가포만 2017. 1. 30. 12:14

‘소주 뱃사공’ ‘뗏목 이천 리’ 등 가요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아

 
 
 

가수 이해연이 군국가요만 불렀던 것은 아닙니다. 1941년 가을에 데뷔해서 8`15까지 약 21곡의 가요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서 아직도 가요 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좋은 노래들은 바로 ‘소주(蘇州) 뱃사공’과 ‘뗏목 이천 리’ ‘황해도 노래’ 등입니다.


 ‘소주 뱃사공’ 원곡에는 일제의 대륙침략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광복 이후에 반야월이 ‘제주 뱃사공’이란 제목으로 가사의 상당한 부분까지 고쳐서 재취입하기도 했지요. 이 노래는 1959년 1월 23일 자 동아일보에서 ‘백만인들에게 불리워진 흘러간 옛 노래-힛트 파레이드 20’에서 15위로 선정될 만큼 그때까지도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뗏목 이천 리’는 압록강을 뗏목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실감을 그대로 느끼게 합니다.

눈 녹인 골짜기에 진달래 피고/ 강가에 버들피리 노래 부르니

어허이야 어허어야 어야디야/ 음 ~ / 압록강 이천 리에 뗏목이 뜬다


전통적인 느낌이 드는 창법으로 유장한 민족사의 현재성과 슬픔을 잔잔하게 풀어가는 애잔한 여운이 감돕니다. ‘황해도 노래’는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이 불렀던 ‘목포의 눈물’처럼 황해도 출신의 가수가 부르는 참으로 구성지고도 아름다운 고향 테마 노래입니다.


재령 신천 나무릿벌 풍년이 들면/ 장연 읍내 달구지에 금쌀이 넘치네

어서 가세 어서 가세 방아 찌러 어서 가세/ 우리 고을 풍년방아 연자방아 돌아간다

해주 청풍 바람결엔 달빛도 좋아/ 연안 백천 모래 틈엔 더운물이 넘치네

어서 가세 어서 가세 머리 빨러 어서 가세/ 참메나리 캤었다고 섬섬옥수 못될 손가

신계 곡산 명주 애기 분단장하고/ 봉산 탈춤 구경 가네 오월이라 단옷날

어서 가세 어서 가세 탈춤 구경 어서 가세/ 망질하는 평산 애기 황소타고 찾어가네


가수 이해연은 1945년 광복이 되면서 새로운 변신을 꾀합니다.

활달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의 재즈풍으로 창법의 혁신을 시도합니다.

이때 미8군 쇼 무대에서 재즈를 부를 때 그녀를 눈여겨보았던 트럼펫 연주자

김영순과 다정한 사이가 됩니다. 재즈 창법을 지도받으며 자주 만나던 두 사람은

기어이 사랑이 싹텄고 결혼에 골인하게 됩니다.


영순은 치과의사 출신으로 미국의 재즈 음악에 상당한 조예를 가졌습니다.

김해송(金海松)과 더불어 한국 재즈의 선구자이면서 미8군 무대에 한국인

가수들이 당당하게 출연하는 과정을 제도화시켰던 장본인입니다.

이해연은 1950년대 초반 방송국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서 ‘통일의 전선’ ‘슈샤인보이’

‘국군의 아내’ ‘소주뱃사공’ 등 여러 곡을 불렀습니다.


1961년 가을에는 일본 국제프로덕션과 거류민단본부 초청으로 베니 킴,

김치켓 등 60명의 가수들과 함께 일본순회공연을 다녀옵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 후반, 미국으로 가족 모두가 이민 길을 떠났습니다.

가수 이해연의 전체 활동 시기는 일제 말 약 4년 동안과 해방 후 약 20년가량입니다.


 해방 직후에는 주로 악극단에서 활동했고, 1950년대 후반 작사가 반야월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서려 있는 ‘단장의 미아리고개’(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한 곡으로

일제 말에 겪었던 수모와 열등감을 깡그리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무대든 서슴없이 찾아가서 이해연은 애절한 절규와 호소력이 느껴지는 창법으로

이 노래를 불러 대중들의 가슴을 사무치게 하고 후벼 팠습니다.


영남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