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한국최초의 재즈전문 가수 이복본 2 2014-04-10 매일신문

가포만 2017. 1. 30. 12:07

가요무대서 코미디 창법으로 엄청난 인기

 
 
 

이복본이 본격적 가수로 데뷔한 것은 1936년의 일입니다. 빅타레코드사에서 째즈쏭이란 장르 명칭으로 ‘자미 잇는 노래’와 ‘누가 너를 미드랴’ 등 두 곡이 수록된 음반을 발매한 것이 처음입니다.


이 무렵에 이복본은 이미 코미디언과 가수를 겸한 활동이 무대 위에서 각광을 받을 것 같다는 예감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새롭게 고안해 낸 것이 프랑스의 샹송 가수이자 코미디언이었던 모리스 슈발리에(Maurice Auguste Chevalier`1888~1972)의 무대 매너와 창법 모방입니다. 모리스 슈발리에의 특징이라면 코에 걸린 듯한 창법과 스타일입니다.


이복본은 모리스 슈발리에의 연기와 노래를 보면서 거기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그 후 이복본은 열심히 슈발리에 스타일을 연습해서 서울 부민관 무대에 올랐습니다. 마치 슈발리에처럼 검은 연미복에 실크 모자를 쓰고 손에는 스틱을 멋스럽게 휘두르며 등장했습니다. 그때 이복본은 인기 높던 신민요 ‘노들강변’을 빠른 스윙 템포로 부르면서 2절의 중간 부분 ‘에헤요 데헤요’를 오케레코드사의 스윙밴드 멤버들과 함께 전원이 일제히 일어서서 합창으로 화답하는 방식을 연출했습니다.


 이것이 객석의 관중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켜 휘파람과 박수 세례가 연달아 터졌습니다. 일부러 술 취한 사람처럼 혀를 꼬부려서 반복, 과장의 변칙창법(變則唱法)을 연출한 것이 뜻밖에도 놀라운 호응을 얻었던 것이지요. 박부용이 부른 원곡 ‘노들강변’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노래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로 ‘노들강변’은 이복본의 최고 대표곡이 되었습니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허리를 칭칭 동여 메여볼까

에헤요 데헤요(에헤요 데헤요) 에헤요 데헤요(에헤요 데헤요)

/ 에헤요 데헤요 에헤요 데헤요 봄버들도 못 믿으리로다

/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 흘러 가노라

-‘신노들강변’ 전문


1936년 빅타사에서 첫 음반을 낸 이후로 이복본은 도합 26편의 음반을 발표합니다.

 거기엔 재즈송만 17편으로 가장 많고, 재즈민요가 1편, 유행가 5편,

만요 1편, 난센스 2편 등이 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복본을 한국 최초의 재즈 전문 가수라고 부를 만합니다.

이복본 재즈송의 특성은 삶의 흥취와 사랑, 행복, 청춘의 구가 등 단순한

 내용들이 주류였습니다.


1936년 1월의 데뷔곡 ‘누가 너를 미드랴’에서 시작하여 1940년 3월의

마지막 재즈송 ‘쓸쓸한 일요일’에 이르기까지 이복본의 활동기간은 도합

4년 3개월입니다. 이복본이 부른 노래는 주로 익살스러운 재즈송이지만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현재 이복본의 음반으로 전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어찌해서 이렇게도 완전하게 음반자료가 사라져버린 것인지 수수께끼입니다.


오직 단 하나 이복본 노래의 가사가 전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청춘의 노래’입니다. 하지만 가사의 일부만 보이고 악곡의 음률은

어디에서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으스름 달 아래 옛 노래 그리워라/ 에레나 나의 사랑아 옛날을 잊었느냐

너와 나와 단둘이만 달 아래 앉아서/ 사랑의 노래 청춘의 노래 부르던 옛날을

-‘청춘의 노래’ 부분


프랑스의 코미디언이자 샹송 가수 모리스 슈발리에를 흉내 내어 인기가

높던 보드빌리언, 즉 통속적인 희극배우 이복본.

그러나 그가 남긴 노래들 중 단 한 곡도 대중들의 가슴에 크게 각인된 히트곡이

없었다는 사실은 많은 아쉬움을 남기게 합니다.


영남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