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아리랑 절창을 부른 신인가수 유선원 ① 매일신문 2014-02-27

가포만 2017. 1. 23. 17:10

지적인 세련미와 모던걸 분위기…스타일·창법으로 기생 출신 가늠할 뿐

 
 
 

예나 제나 대중연예계에는 촉망받는 신인으로 소개되면서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너무도 짧은 기간 동안만 활동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1937년 9월 ‘이별의 처녀’를 첫 음반으로 발표하면서 콜럼비아레코드사 전속으로 데뷔한 유선원(柳善元)도 1938년 3월 가요계를 완전히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의 가수 활동기간은 고작 6개월 남짓합니다. 하지만 이 짧은 기간 동안 유선원은 7곡의 신곡을 발표하였고, 또 그 가운데서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는 절창 한 곡을 남겼습니다.


가사지에 수록된 사진으로 가수 유선원의 생김새를 더듬어보면 아주 재기발랄한 20대 초반의 처녀입니다. 사진 속에서 유선원은 귀엽고 동그란 로이드 안경을 끼고 왼쪽 옆을 슬쩍 바라봅니다. 그 포즈에서 지적인 세련미가 느껴집니다. 한 가운데에 가르마를 타서 쪽을 진 머릿결은 동백기름이라도 발랐는지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타원형으로 동그스름한 얼굴은 꽤 지적이고 세련된 모던 걸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신인가수 유선원의 출생과 생애, 갑자기 가요계를 떠난 까닭에 대해 알려주는 자료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부른 노래의 스타일과 창법을 비롯한 여러 정황으로 짐작하건대 왕수복이나 선우일선, 이은파처럼 권번에서 활동하던 기생 출신 가수였던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권번도 어느 권번 소속인지조차 알아볼 길이 없지만 우리는 다음 활동내용을 통해 유선원이 평양 기성권번 출신이 아닌지 가늠해봅니다.


유선원은 신인가수가 되어서 1938년 3월 29일 저녁 8시 50분 경성방송국 제2방송 ‘신민요와 가요곡’ 프로에 가수 최명선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이날 그녀는 ‘포구에 우는 여자’ ‘처량한 기타소리’ ‘울고 떠나간 님’ 등 자신의 대표곡 3편을 평양방송관현악단 반주에 맞춰서 불렀습니다. 서울의 방송국에 출연했는데 왜 그날 따라 하필 평양관현악단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을까요?


평양관현악단이 연주차 서울에 왔을 때 공연을 마치고 방송국 요청으로

반주를 하게 되었을 때 일부러 평양출신 가수를 불렀을지도 모릅니다.

유선원은 데뷔곡인 유행가 ‘이별의 처녀’(이하윤 작사, 전우삼 작곡, 콜럼비아 40783)를

비롯해서 신민요 ‘상록수’(이노홍 작사, 전기현 작곡, 콜럼비아 40786),

‘청춘명랑보’(이하윤 작사, 전기현 작곡, 콜럼비아 40787),

신민요 ‘가벼운 인조견을’(을파소 작사, 정진규 작곡, 콜럼비아 40790),

‘포구에 우는 여자’(이하윤 작사, 전기현 작곡, 콜럼비아 40795),

‘처량한 기타소리’(이하윤 작사, 손목인 작곡, 콜럼비아 40798)와

마지막 곡인 ‘울고 떠나간 님’(박루월 작사, 손목인 작곡, 콜럼비아 40807) 등 7곡을 남겼습니다.


유선원 노래의 가사와 곡조를 살펴보면 슬픈 색조의 노래가 4편,

밝고 경쾌한 느낌의 노래가 3편입니다. ‘이별의 처녀’는 슬픈 노래입니다.

향가와 고려가요, 혹은 김소월 시작품에 나타나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이별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사랑하던 여인을 버리고 떠나간

남성을 애타게 찾으며 그리워하는 이별의 정조와 서러움이 담겨있습니다.


1937년 콜럼비아레코드사 전속 신인가수로 소개되었는데 ‘이별의 처녀’로 데뷔해서

마지막 곡이 ‘울고 떠나간 님’이니 유선원은 과연 가슴속에

슬픔을 지닌 이별의 처녀로 나타났다가 떠나기 싫었던 가요계를 울면서

홀연히 떠나간 것은 아닐까요?


‘상록수’도 제목의 느낌과는 다르게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늘 푸른 상록수에

비견해서 엮어가는 노래입니다. 사랑의 아름다움과 영원함, 인생은 유한하지만

사랑의 마음은 언제나 항구적이고 영원무궁토록 이어진다는 삶의 인식,

혹은 사랑의 덧없음과 무상함, 사랑의 내적 질서와 자연스러움,

사랑의 발전과 번성 따위에 대해서 전체 5절가사로 곡진하게 펼쳐갑니다.

민요적 조흥구(助興句)를 활용하는 방법도 특이합니다.


영남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