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명문가의 막내였던 가수 설도식·1 매일신문 2014-02-13

가포만 2017. 1. 23. 17:04

명문가 자제로 관직·법조계 대신 대중문화 선택 놀라워

 
 
 

명문가의 형제로 태어나 세상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린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대구 월성 이씨 집안의 이상정(독립투사), 이상화(시인), 이상백(학자), 이상오(수렵가) 등 한국 근대사에서 출중했던 4형제도 있었고, 안동 도산의 진성 이씨 퇴계 후손으로 이원기, 이원록(시인 이육사), 이원일, 이원조(문학평론가), 이원창, 이원홍 등 6형제의 사례도 있었지요. 그 밖에도 이런 사례를 들자면 한량이 없거니와 한 집안에서 태어난 형제들이 빛나는 재주와 그 명성을 세상에 높이 떨친 일들은 두고두고 세간에서 널리 화제가 되곤 합니다.


명문가 형제들의 또 다른 사례를 하나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함경남도 단천(端川) 출생으로 일찍이 일제강점기 초반 조선물산장려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이준(李儁`1859∼1907)과 함께 관북흥학회(關北興學會)를 조직했으며, 안창호(安昌浩`1878∼1938)와 함께 서북학회(西北學會)를 조직했고, 서북학교(건국대학교의 옛 이름)의 창설 공로자였던 구한말의 선각자 오촌(梧村) 설태희(薛泰熙`1875∼1940) 선생은 슬하에 다섯 남매를 두었습니다. 장남 설원식(薛元植)은 만주에서 농장을 경영했는데 장수같이 씩씩한 외모를 가졌다고 합니다.


둘째는 그 유명한 언론인 소오(小梧) 설의식(薛義植`1901∼1954)입니다. 손기정(孫基禎`1912∼2002)의 일장기 말살사건의 책임자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직에서 물러났던 분입니다. 셋째가 설정식(薛貞植`1912∼1953)으로 1930년대의 시인이자 영문학자로 활동했습니다. 설정식은 광주학생사건에도 가담했었지요. 막내는 설도식(薛道植`1915∼?)입니다. 일제강점기 말에 가수로 데뷔해서 음반을 발표하며 가요계에서 활동하다가 광복 이후 사업가로 변신했습니다.


이런 내용과 술회들은 모두 설정식의 친구였던 아동문학가 윤석중(尹石重`1911∼2003)이 쓴 글 ‘이런저런 편력(遍歷)’에 나옵니다.

1925년 2월 4일 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총명한 소년 설정식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수재아동 가정소개-장래의 문학가 : 교동보통 4학년 설정식은 매일 아침

학교 갈 때 동생 도식의 손을 잡고 간다.

이 기사를 보면 설도식의 부친 설태희 선생은 1920년대 중반 이미 서울로 옮겨와서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자리를 잡았던 곳은 서울 종로구 계동의 보성보통학교

부근에 있었는데 안방으로 들어가려면 여러 개의 대문을 거쳐야 하는

부유한 한옥이었던 것 같습니다.


설도식의 형 정식은 1932년 봄, 보성고보 재학생으로 이 학교가 중심으로

활동하던 반제동맹에도 가담했습니다. 1940년 1월 23일 자 동아일보 기사는

이 설씨 집안의 근황에 대하여 특이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온돌방이 자폭-나쁜 석탄을 때다 구들장이 폭파-종로서 관내만 해도 5개처-신교정

설원식의 집에서 폭파-효자정 6번지 설도식의 집에서도 폭파-날이 추워서

서울 왕십리 삼국상회에서 불량석탄을 구입해 군불을 때다가 폭발되어

온돌이 파괴’란 내용이 그것입니다. 그만큼 당시 석탄의 품질이 좋지 않았음을 증언해 줍니다.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1888∼1968) 선생과도 교유를 나누던 완고한

우국지사의 가문에서 언론인, 학자, 사회주의자 아들이 배출된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만 막내 설도식이 대중음악의 길로 나아간 것은 참으로 뜻밖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식의 뜻을 극구 만류하지 않고

뜻을 존중해 주었던 가문의 자유주의적 가풍을 짐작게도 합니다.


설도식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다만 동아일보 기사에서

설도식이 형 정식과 세 살 차이란 대목을 보면 1915년 출생이 확실해 보입니다.

서울에서 고보를 마치고 일본의 법정대학 법과를 졸업한 엘리트였습니다.

그런 설도식이 관직이나 법조계에 관심을 두지 않고 대중문화 쪽으로

자신의 방향을 설정한 것은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영남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