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교수 옛노래 칼럼

이동순의 그 시절 그 노래(20)김용환의 ‘장모님전 항의’ 2016-11-16 농민신문

가포만 2016. 12. 17. 10:38

데릴사위 애간장만 ‘바싹바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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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가 생활문화사적으로 소중한 까닭은 가사의 배경이 된 그 시대 주민들의 삶과 내면풍경까지 소상하게 알려준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1940년 3월 빅타레코드사에서 발표된 가요 ‘장모님전 항의(김성집 작사, 김양촌 작곡, 김용환 노래)’에 반영된 내용을 흥미롭게 더듬어 보고자 합니다.

장모님 장모님 / 갓 서른에 첫 본 선이 열두살짜리 따님이라 / 노총각 타는 속은 귀신도 몰라줍디다 / 언제나 다 자라서 찰떡치고 국수 삶고 잔치 하나요 / 장모님 왜 그러냐 장모님 우째 그래 /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속상해서 못 살겠어요 / 응 못 살겠어요

 - ‘장모님전 항의’ 1절


올해 서른살 된 노총각은 열여덟살이나 아래인 열두살 소녀 집으로 데릴사위란 명분에 팔려서 들어가게 됩니다. 딸이 자라면 혼례식을 올려주겠노라는

처가의 약속이 있었지만 이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습니다. 노회(老獪)한

장모의 마음속을 헤아리지 못한 노총각은 머슴살이와 다를 바 없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 애간장만 바싹바싹 타들어 갑니다.

 

한국인의 고대신화를 보면 신라의 박혁거세, 석탈해가 모두 데릴사위 시절이 있었다고 하네요. 이러한 관습이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져 온 흔적들을 이 노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예서제(豫壻制)’라 해서

빈농(貧農)이나 화전민 중에는 비록 아들이 있어도 사위를 맞아들여 한 식구로 살아갑니다. 그러고선 사위로부터 일정기간 무상(無償)의 노동력을 제공받다가 나중에 분가를 시켜주거나, 아예 처가 식구들과 살림을 합쳐 살아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데릴사위는 처가와 경제적인 의존관계에 놓여 있었으므로 비굴한 머슴살이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겉보리 서말만 있으면 처가살이하랴’라는 슬픈 속담까지 생겨날

정도였겠습니까?

세월이 많이도 흘러갔습니다. 아직도 부유한 처가에 자신의 삶 전체가

부자유스럽게 꽁꽁 묶인 채 종속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위들이 이땅에는

더러 있을 듯합니다. 그들이 당당한 존재감으로 독립하게 되는 그날을

기원하면서 오늘은 ‘장모님전 항의’를 들어봅니다.

 이동순<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